즐거운 쇼핑의 시작, 풍수백화점에서!

본문 바로가기
0
쇼핑몰 전체검색
메인으로

풍수백화점

풍수백화점



정판성박사의 수맥풍수

본 페이지는 정판성박사의 수맥과 풍수이야기로서,간산기와 함께 수맥과 풍수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해 나가는 코너입니다.수맥과 풍수에 관심있는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아래에 박사님의 글이 차례로 연재되어 있습니다.↓↓

농학박사 정판성

1943년 전남 고흥 출생

전남대 농과대학과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농학박사

광주농고,상무고를 거쳐 전남대 사범대부설고 교장으로 재직

순천대,전남대 강사.

전남대 평생교육원 '풍수와 수맥과정' 전담 강사

한국농업교육학회 부회장 역임

네덜란드에서 원예학 연수

1994~95년 한해 때 수맥찾기 봉사 전남도지사 감사패 받음

풍수연구단체<孝風學會>회장

대한민국 각 수맥협회 자문

저서로는 [생활수맥 건강수맥],[앉기만 잘해도 성적이 쑥쑥] 등이 있음

예향,대동문화 월간지에 수년간 '풍수'연재

MBC TV '아침마당' 등 TV및 신문,잡지에 12회 방영 및 보도

※아래에 박사님의 수맥과 풍수이야기가 연재되어 있으니,클릭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에 박사님의 수맥과 풍수이야기가 연재되어 있으니,클릭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정판성박사의 수맥풍수

정준하선생 묘의 풍수지리적 해석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1 

댓글 0건 조회 3,960회 작성일 2012-08-07[14:10]

본문


장준하 선생 묘지의 풍수지리적 해석

풍수지리 ‧ 수맥 연구가, 농학박사 정판성

장준하(1915∼1975)선생은 언론인•정치가이다. 평안북도 선천 출생. 장로교 고려신학파(高麗神學派) 목사 석인(錫仁)의 아들이다. 도요대학(東洋大學) 예과를 거쳐 동경의 니혼신학교(日本神學校)에 다니다가 1944년 일본군 학도병으로 중국에 파병되었다.입영6개월 만에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국 임천(臨泉)에 있던 중국중앙군관학교(中國中央軍官學校) 임천분교 한국광복군 훈련반에 입대하였다. 이곳에서 김준엽(金俊燁)과 ≪등불≫이라는 필사본 잡지를 발간하였다. 그러나 한국광복군이 그 해 11월 30일 이곳을 떠나게 되어 잡지 발간이 중단되자, 혹한 속에 도보로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重慶)으로 출발, 만 2개월 만인 1945년 1월 30일 도착하였다.
 

서안광복군(西安光復軍) 제2지대 이범석(李範奭) 휘하에 들었다가, 유엔군 중국전구사령부(中國戰區司令部) 웨드마이어(Wedemeyer,A.C.) 휘하에서 미군 전략정보처(OSS)유격훈련을 받았다. 이곳에서 교포들의 친목지로서 잡지 ≪제단 祭壇≫ 초판 300부를 펴냈다. 광복이 되자 8월 18일에는 광복군의 국내정진군(國內挺進軍) 선발대로 여의도 비행장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임시정부주석 김구의 비서가 되어 1945년 12월 환국하였다.
 

1946년 조선민족청년단 중앙훈련소교무처장으로 정계에 잠시 몸담았으나, 그 동안 못다 한 학업을 마치기 위하여 한국신학대학을 다녔다. 1•4후퇴 때 부산에 피난한 뒤, 1952년 9월 문교부산하의 국민사상연구원에서 ≪사상≫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였으며, 1953년에는 피난지에서 무일푼으로 ≪사상계 思想界≫를 창간하였다.
1962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 언론 부문상을 수상하였다. 1966년 대통령명예훼손혐의로 검거되어 복역중 1967년 서울 동대문 을구에서 신민당공천으로 옥중출마하여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1년 신민당을 탈당하고 사상계사장에 복귀하였으며, 1973년 통일당 최고위원이 되었다. 1974년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다.
 

민권투쟁으로 10여 회나 투옥되었으며, 가석방이 되어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민권운동을 전개, 1975년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본부의 이름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하였다. 대통령 자신이 개헌을 발의해서 완전한 민주헌법을 만들고 그 헌법에 따라 자신의 거취를 정할 것과 긴급조치로 구속된 민주인사와 학생의 무조건 즉시석방, 자유언론의 보장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생애가 끝날 즈음에는 정당활동보다 민주회복국민회의를 통한 재야운동에 전념하였다. 1975년 8월 17일 등산길에서 의문의 추락사고로 사망하였다. 저서로 ≪돌베개≫가 있다.
 

장준하(1918∼1975•왼쪽) 선생의 추모공원이 장 선생의 37돌에 맞춰 오는 8월17일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688번지 자유로 인근 3,967㎡ 자연공원에 조성 중에 있다. 파주시와 유가족, ‘장준하선생기념사업회’는 파주군 광탄면 신산리 나사렛 천주교 공동묘지에 있는 장 선생의 유해를 2012년 8월 1일 이곳으로 옮겼다. 필자가 5월 10일과 5월 26일 2회에 걸쳐서 묘지 후보지를 물색했고 8월 1일 이장 등 풍수에 관한 일을 도맡아했다. 그래서 장준하 선생의 묘지에 대해서 풍수지리적으로 설명을 하고자 한다. 묘지 후보지는 파주시에서 대강 정해 주어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

1. 용(龍)
산이 조산(祖山)으로부터 사방팔방으로 굽이쳐 뻗어간 줄기를 모두 용(龍)이라고 한다. 산의 변태(變態)는 천태만상으로 높고 낮고, 크고 작고, 일어나고 엎드리고, 급하고 완만하고, 순하고 거슬리며 혹은 굽고 곧아서 용(龍)이 꿈틀거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을 용(龍)이라 하여 풍수 용어로 쓰고 있다. 홀로 솟아 있는 형체를 산(山)이라 하고 산과 산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을 용맥(龍脈)이라고 한다.
용신(龍身)이 수려하고 지각(枝脚)이 살고 행도(行度)가 사방으로 활짝 벌려 이끌어나간 형상이다. 용이 출맥(出脈)하여 아래로 가면서 기복과 고저가 있고, 좌우로 날개를 펴고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비틀거리며, 꿈틀대는 모습이며 소리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듯 하는 것이 생룡(生龍)인데 이런 용이 가장 좋다.
이 묘를 보면 위로 변화를 주면서 길게 뻗어내려 오는 산이 고려역사관이 있는 곳에서 웅장한 모습을 하고는 1km쯤 뻗어 내려와 작은 현무봉(玄武峰)과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를 만든다. 용(龍)이 아주 높지 않고 기복(起伏)이 심하지 않아 강룡(强龍)은 아니지만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생기(生氣)가 넘치는 순룡(順龍)이다. 그런대로 잘 생긴 용이라 하겠다. 뒤에서 받쳐주는 큰 산이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나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


(사진) 고려역사관 오른쪽에 진단산(黰丹山)이 있다.

2. 사신사(四神沙)
사신사(四神沙)는 혈의 사방을 둘러싼 산이다. 혈의 뒤에 있는 것을 현무(玄武), 앞에 있는 것을 주작(朱雀), 좌측에 있는 것을 청룡(靑龍), 우측에 있는 것을 백호(白虎)라 한다.
만일 혈(穴)이 남이면 현무는 북쪽, 청룡은 동쪽, 백호는 서쪽, 주작은 남쪽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혈의 뒤쪽을 현무, 앞쪽을 주작, 왼쪽은 청룡, 오른쪽은 백호가 된다. 혈에서 보면 현무는 본산(本山)의 내룡(來龍)이고 청룡은 좌산(左山), 백호는 우산(右山), 주작(朱雀)은 앞에 면(面)한 산이다.
이 4 개의 사(沙 : 山)는 혈(穴 : 묘의 자리)을 호위하고 혈을 위한 장벽이다. 그러므로 사신사는 기를 혈에 모으고 혈에서 화순(化醇 : 잡된 것을 없이하여 순수하게 만듦)을 돕는 일을 하는데 그 어느 쪽이 무정하게 돌아서거나 서로 투기하고 시체를 무는 듯 하는 자세를 하면 화순하기가 어렵다. 이 사신사는 원래 장풍(藏風 : 바람을 막아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사신사에 결함이 있게 되면 장풍이 어렵다. 사신사가 혈(穴 : 묘를 쓰거나 집을 지을 장소)을 여러 겹으로 싸주어 바람을 막아서 기(氣)가 흩어지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묘의 경우 혈의 양쪽으로 조그마한 산의 맥이 나와 있어서 좌청룡과 우백호의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큰 힘은 되지 못한다. 뒤에 있는 현무는 힘이 약하지만 그런대로 괜찮다. 앞에서는 잘 생긴 오두산이 막아주고 있어 주작(안산)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좌청룡과 우백호는 산만이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고 물도 그 역할을 대행한다. 특히 평지에서는 냇물이나 강물이 사신사를 대신한다.
그런데 이 묘의 경우 왼쪽에서는 한강, 오른쪽에서는 임진강이 흐르고 있어 이 두 강이 외청룡과 외백호의 역할을 당당히 해주고 있다.


(사진) 정면 가로등 바로 왼쪽 〇표시가 된 부분이 묘 자리인데 양쪽으로 작은 용맥이 좌쳥룡과 우백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안산(案山)은 모름지기 반듯하고 다소곳하며 다정하게 보여야 한다. 안산이 비뚤어진 곳에 조상의 묘를 쓰면 마음이 비뚤어진 자손이 나온다. 멀리 있는 조산이 아무리 잘 생겼어도 가까운 안산이 나쁘면 자손들이 많은 화를 입게 된다. 그런데 이 묘 앞에는 노적봉 모양의 아주 잘 생긴 안산이 북서쪽에 있어서 겨울철의 매서운 바람을 막아 기의 흩어짐을 방어해 주니 자손들이 대대로 부귀를 누리게 될 것이다.


(사진) 파주통일전망대 옆의 노적봉 모양의 안산

3. 혈(穴)
용이 생룡(生龍)과 진룡(眞龍)으로 내려오고 청룡과 백호를 갖추어 장풍(藏風 : 바람을 막아줌)과 득수(得水 : 물이 흐름)를 이뤄 성국(成局)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결혈(結穴) 이전의 선행조건이지 아직 혈(穴) 그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다. 풍수의 주된 목적은 혈에 있다. 제대로 된 혈을 찾지 못하면 완전한 풍수라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풍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혈이다. 성국내(成局內) 어디나 혈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고가(古歌)에 읊고 있는 것처럼 “(이천리래용입수, 유융팔척지혈:以千里來龍入首, 惟融八尺之穴) 산줄기가 천리를 내려와 입수한 것은 오직 8자의 혈을 맺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니 극히 작은 부분에만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를 찾기가 쉽지 않고, 또한 「장경(葬經 」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호리지차 화복천리(毫釐之差, 禍福千里) 즉, 털끝만금의 오차가 있어도 그 재앙과 복은 천리를 간다라고” 했다. 용이 좋고 성국이 아무리 훌륭해도 혈이 나쁘면 결국 발복(發福)을 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큰 화를 당하게 되니 점혈(占穴)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수세(水勢)를 보아서 재혈(裁穴)에 증거로 삼기도 하는데, 진혈(眞穴)은 여러 물이 합쳐 모이고 물은 산을 따라 안고 돌아오는 곳에 맺는다. 물이 모이거나 멀리서 포옹하거나 혈을 향하여 들어오는 수세에는 반드시 혈이 맺는다고 하였으니 물을 알지 못하면 혈을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산에 점혈(占穴)할 때에는 수세를 살피어 명당 좌편에 수세가 모이거나 좌편을 수역(水域)이 활처럼 포위하면 혈은 좌편에 결혈(結穴)이 되고 수세가 우편에 모이거나 우편을 환포하면 우편에 결혈이 될 것이요, 또 명당의 중앙을 향하여 물이 모여 들어오거나 나가는 물이 멈추어 수역이 둥글게 안으면 혈은 정중앙에 있다. 물의 분합(分合)으로 혈을 정하기도 한다.
이 묘의 경우 수구가 오른쪽에 있어 수세가 오른쪽으로 모이고 있고 또한 한강 물이 오른쪽 감고 흐르고 있으며, 혈의 위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흐르는 물이 밑에서 만나 수구로 빠져나가고 있어 혈의 우측에 점혈(占穴)을 하였다.
용맥의 혈이란 것은 성국의 형세에 따라 결처(結處 : 모이는 지점)를 달리하는 것으로 점혈을 할 때는 먼저 혈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다음으로 입수(入首)와 명당(明堂) 등을 둘러봐야 한다. 혈형(穴形)은 와(窩), 겸(鉗), 유(乳), 돌(突)을 사상(四象)이라고 말해 기본형으로 삼는다. 이는 혈(穴)의 凹凸을 음양으로 간주하고, 음양을 다시 발전하면 사상(四象)이 되므로 이 사상에 적합하도록 요형(凹形)에 속하는 와(窩)와 겸(鉗), 철형(凸形)에 속하는 유(乳)와 돌(突)의 네 가지로 나누어서 음양의 발전설에 일치시킨 것이다.
이 묘의 혈형(穴形)은 유혈(乳穴)이다. 혈은 대략 6격이 있는데 그 중에 장유(長乳), 단유(短乳), 대유(大乳), 소유(小乳)의 4개를 정격(正格)으로 보고, 쌍유(雙乳), 삼수유(三垂乳)가 변격(變格)이다. 대개 이 유혈은 그 유체(乳體)가 이지러지거나 드러나며, 오목하고 굽은 것을 가장 꺼려하고 양팔이 활처럼 싸안은 것을 좋아한다. 6격에는 각기 양팔이 교차하는 것과 교차하지 않은 것이 있다. 유(乳)의 원 속에서 서창(舒暢 : 여유 있게 마음을 가짐)하고, 유상(乳上)이 광원(光圓)하며, 양궁(兩宮:兩臂;두 어깨)이 유정(有情)하여 밖에서 그것을 보면 양쪽이 손을 맞잡고 있는 듯 하는 것이 좋고, 양팔이 무정하거나 좌공우결(左空右缺 : 왼쪽이 비고 오른쪽에 이지러짐)하고 꺾이고 푹 빠져 물과 바람이 스며드는 곳은 흉하다. 이러한 흉한 곳에 묘를 쓰면 사람이 절멸하고 요사(夭死)하거나 후사(後嗣)가 끊긴다.
대유(大乳)는 양팔 중간에 늘어진 큰 유방이다. 너무 크면 생기가 한 곳에 뭉치지 않으니 진혈(眞穴)이 아니다. 적당히 크면서 생김새가 매끈하고 단정해야 한다. 그 형상이 좌우로 완만하고 둥글게 안은 듯 지키고 유정하며, 유방이 한복판에 있고 기울거나 가파르지 않은 것이 좋다. 이 묘의 혈은 대유혈(大乳穴)로 좌우로는 완만하고 둥글며 안은 듯이 하나 경사가 좀 급한 것이 흠이다. 그러나 경사가 아주 심하지는 않아 그런대로 무난하다. 처음에는 현재의 위치에서 40m쯤 위에 묘 자리를 잡았는데 여기는 평평하고 혈토도 좋고 안산이 멀리 보여서 현재의 위치보다 훨씬 좋다. 그러나 추모공원의 광장과 시설물과의 거리, 묘지에 관한 법률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현재의 위치에 묘 자리를 정했다.
유골이 묻힐 혈심(穴心 : 묘의 壙中 팔 자리)은 한 치의 차만 있어도 안 된다. 묘를 파서 보면 유골의 일부는 노랗고 일부는 새까만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 묘 자리를 조금만 이동했어도 아주 좋았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는 추로써 땅의 기가 모이는 곳을 탐지해서 유골이 묻힐 혈심(穴心)을 찾는데 이는 필자만이 소유하는 초능력이다.

4. 수세(水勢)
사방에서 흘러온 수많은 물줄기가 모여서 생겨난 것이 강물이다. 강물은 깊고 크기 때문에 웅대한 기운이 서린다. 그래서 대도시들이 강을 끼고 형성된다. 강물은 감싸고 휘돌아야 좋다. 곧게 흐르거나 반궁수(反弓水)처럼 혈(穴)을 등지고 굽어 흐르면 정기가 모이지 않는다. 강물이 휘감아주는 명당혈에 묘를 쓰면 자손들이 큰 부자와 큰 벼슬을 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의 조상 묘가 대부분 큰 강물이나 호수, 바다를 끼고 있다. 큰 산줄기는 바다와 함께 강을 만나서 멈춘다. 큰 산줄기와 강물이 만나는 곳에도 엄청난 기운이 서린다. 물이 없으면 도로가 물을 대신한다.
이 묘는 바로 앞 10시 방향에 한강의 하구가 나무 사이로 보이고 건너편으로 김포시가 보인다. 오두산 뒤로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 강화도 쪽으로 빠져나가지만 파주통일전망대가 위치한 오두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는 문산으로 가는 자유로의 큰 도로가 있고 이 안쪽으로는 또 다른 큰길이 묘를 안고 뻗어있다.
 

신경준(申景濬)은「산수고(山水考)」에서 ‘하나의 근본이 만 갈래인 것이 산이고, 만 갈래 다른 것이 하나로 합하는 것이 물’이라는 구절을 인용한 바가 있다. 이를 기(氣)와 연관하여 본다면, 산이 만 갈래지는 것은 기가 확산되는 과정이고, 물이 하나로 모이는 것은 기를 모이게 하는 수렴(收斂)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산은 기를 풀고, 수는 기를 엮으니 비유컨대 산수(山水)는 기라는 베를 짜기 위한 날줄과 씨줄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산과 수 중에서 어느 것이 양이고 어느 것이 음인가. 호순신(胡舜臣)은 「지리신법(地理新法)」에서 “산은 고요한 것으로 음(陰)에 속하고 수(水)는 움직이는 것이니 양(陽)에 속한다고 했다. 음양은 조화로워야 생성(生成)의 도(道)를 이룰 수가 있다. 산수의 음양도 마찬가지이다. “산수가 서로 적합하면 음양이 조화롭고, 음양이 조화로우면 기가 조화롭다. 산수가 모이면 음양이 모이고 음양이 모이면 기를 생기게 하니, 이른바 길(吉)하다.”고 한다. 또한 “산은 솟아올라 정적(靜的)이고 부인(婦人)이며, 수는 흘러 동적(動的)이니 양이고 남편이다. 부부가 어울러야 생명을 잉태함과 마찬가지로 산수가 교류하여야 진기(眞氣)가 모인다.”고 하였다. 그래서 음과 양 한쪽으로 편백되고 치우친 것은 좋지 못하다. 산과 수로 보자면 산수가 조화로워야지 어느 한편이 우세하거나 열세하면 음양이 조화롭지 못하여 흉하다고 모든 풍수서 들은 한 결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이 묘의 경우 만약 한강이나 인진강의 큰물이 바로 앞에서 보였다면 산세에 비해 양인 물이 음인 용(산)에 비해 커서 양과 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좋지 않았겠지만 앞에 있는 오두산이 강물을 가려서 왼쪽으로 물이 적당히 보일 뿐이다. 왼쪽으로 있는 나무들은 베어내지 말고 그대로 두어서 물을 가려주는 것이 좋다.


(사진) 10시 방향으로 보이는 한강 하구


5. 좌향(坐向)
산과 물 기타 여러 주변 현상에 의해 땅에 생기(生氣)가 모이게 된다. 생기가 모인 곳이라도 묘지나 주택의 방향이 바르게 되면 좋은 영향을 받게 되고 바르지 못하면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용(龍)과 혈(穴)이 좋고 방향이 좋아야 제대로 발복(發福)이 된다는 것이다.
 

좌향(坐向)을 정할 때 입수(入首)가 내려오는 방위를 기준으로 하는 것과 좌청룡과 우백호에서 흘러오는 물이 합류에서 사라지는 곳 즉, 수구(水口)의 방위를 기준으로 하는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오늘날에는 수구를 중심으로 좌향을 정하는 88향법과 구성법(九星法)이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다.
 

이 묘는 비가 오면 혈의 왼쪽에서 흘러나온 물이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흘러들어 오른쪽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합쳐서 땅속 배수로를 통해 한강으로 흘러나간다. 물이 합쳐 빠져나가는 물구멍은 묘에서 보아 해(亥)의 방향에 위치한다. 그리고 사(巳)방위로 입수가 되고 좌선수(左旋水)가 되어야하므로 여기서는 88향법으로 정묘향(正墓向)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진좌술향(辰左戌向)으로 좌향을 정했다. 장준하 선생은 1918년생(戊午生)인바 무오(戊午)는 납음오행(納音五行)으로 화(火)에 해당되기 때문에 분금(分金)은 경진(庚辰)으로 정했다.
 

정묘향(正墓向)은 신,정,계,진,술,축,미(乙,辛,丁,癸,辰,戌,丑,未)의 8개 향이다. 4국의 절궁(絶宮=胞宮)으로 파구하고, 포태법상(胞胎法上) 본국(本局)의 묘향(墓向)이 된 것을 정묘향(正墓向)이라 한다. 우선룡(右旋龍)에 좌선수(左旋水)가 합법이다. 좌변(左邊)의 제왕수(帝王水)와 우변(右邊)의 생수(生水), 양수(養水) 등이 당전(堂前 : 명당 앞. 묘지 앞)에서 합류하여 혈전(穴前)에 생왕기(生旺氣)를 쏟아 붓고 절궁(絶宮)으로 소수(消水)하는 길격(吉格)이다. 용과 혈이 제대로 갖추어지면 크게 부자가 되고 자손들이 크게 이름을 떨치며 남녀가 장수하고 효도하고 충성하는 어진 사람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만일 우선수가 상당(上堂)하여 당문파(堂門破 : 묘지 바로 앞이 파구가 됨)가 되면 크게 패한다.
 

이 묘는 입수(入首)가 사방(巳方)이기 때문에 빠르면 2년 늦으면 2대에 발복하는데 묘 자리가 나쁠 경우 빠르면 2년 늦으면 2대에 패하게 된다.

 

四局

破口

向

坐向

木

坤申

丁未

癸坐丁向 丑坐未向

火

乾亥

辛戌

乙坐辛向 辰坐戌向

金

艮寅

癸丑

丁坐癸向 未坐丑向

水

巽巳

乙辰

辛坐乙向 戌坐辰向





구성법(九星法)은 좌(坐)를 기준으로 물이 오고가는 득수(得水)와 파구(破口)가 길방(吉方)인지 흉방(凶方)인지를 분별하는 방법이다. 탐랑(貪狼), 거문(巨門), 무곡(武曲)은 상격길성(上格吉星)이며, 문곡(文曲), 녹존(祿存), 보필(輔弼)은 중격길성(中格吉星)이고, 염정(廉貞), 파군(破軍)은 흉격성(凶格星)이다. 이를 다시 길성(吉星)과 흉성(凶星)으로 나누면 탐랑(貪狼), 거문(巨門), 무곡(武曲), 보필(輔弼)은 길성(吉星)이고, 문곡(文曲), 녹존(祿存), 파군(破軍), 염정(廉貞)은 흉성(凶星)이다. 득수(得水)는 길성방(吉星方)이라야 하고 좌(坐)는 흉성방(凶星方)이라야 한다.
이 묘는 구성법으로 따져보면 수구는 해방(亥方)이고, 좌(坐)는 진(辰)이다. 이는 구성(九星)의 염정(廉貞)에 해당되어 흉성(凶星)이 되는바 구성법으로도 합당하다.

6. 물형(物形)
좋은 형국(形局)은 좋은 기를 낳고 나쁜 형국은 나쁜 기를 낳는다. 따라서 좋게 생긴 형국은 선량(善良)을 배출하고 추악하게 생긴 형국은 추악한 인물을 배출한다. 그러므로 형국이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 묘는 월농산(月籠山)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서쪽 산자락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려와서 진단산(黰丹山 : 일명 黔丹山)을 이루고 건너편에 작은 오두산(烏豆山)을 만들어 안산을 역할을 하고 있다. 월농산에서 뻗어 내려오는 용맥(龍脈)이 기복(起伏)과 과협(過峽)이 심하지 않아 용(龍)이 아니고 뱀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용맥이 두텁기 때문에 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용맥이 끝이 한강에 닿아 있으므로 창용창수형(蒼龍漲水形)으로 보아야 한다. 이 형국은 푸른 용이 넘치는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혈은 용의 이마에 있다. 안산은 구슬, 무지개, 큰 강 등이다. 용이 물을 만났으니 자손들이 번연하고 가세가 번창할 것이다.


(지도) 진단산(黰丹山 : 일명 黔丹山)의 산세(자료 : 廣輿圖)

7. 기타
(1) 혈토(穴土)
가로 1.8m, 세로 2.0m, 깊이 1.0m의 크기로 광(壙)을 파고 석판(石板)으로 석실(石室)을 만들고 여기에 관을 넣고 매장했다. 혈토(穴土)도 좋아야 하는데 혈토가 약간 자갈이 섞인 흙이었다. 그래서 마사토를 구해 와서 사용했다. 옛날부터 혈토가 좋지 않으면 다른 데서 좋은 흙을 구해 와서 사용하기도 했었는데 이런 흙을 명당토(明堂土)라고 한다.
(2) 봉분(封墳)의 형태
묘의 모양은 땅위로 솟은 원형이 보통이고 직사각형의 묘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이 묘는 가로 1.8m, 세로 2.0m, 두께 10cm 크기의 직사각형 흰색 석판을 위에 덮고 그 위에는 가로 1.5m, 세로 1.7m, 두께 20cm 크기의 타원형 검정색 석판을 덮었다. 중국의 천문사상의 하나인 천개설(天蓋說)에 따라 지방(紙榜)이나 홀(笏) 같은 것은 위가 둥글고 밑은 각이 지게 만든다. 옛날 우리나라 묘를 보면 앞은 네모나고 뒤는 둥근 전방후원(前方後圓) 형태도 있다.
이 묘도 천개설과 음양에 준하여, 밑은 땅이니 밑의 석판 모양은 네모나고 위는 하늘이니 위의 석판은 둥글다. 또 음양(陰陽)을 갖추기도 했는데 밑의 석판은 흰색으로 양(陽)이고 위의 석판은 검정색으로 음(陰)이다.


(사진) 광 위에 덮은 석판(서있는 사람은 필자임)

목록으로

최근 본 상품

없음

1:1문의

카카오톡상담

원격지원

TOP